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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혜공주 몰락 능지처참 이유

by #~%/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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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경혜옹주는 문종이 세자시절 후궁 권씨에게서 본 딸이다. 이후 세자빈이 된 현덕왕후는 1441년 아들을 낳은 직후 세상을 떠났고, 이 원손이 바로 후의 단종이 된다.

공주는 6살에 어머니를 잃었지만 할아버지 세종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가 궁전 밖에서 결혼한 것은 1450년이었다.

경혜공주는 시집갈 때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혼부부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한양 한가운데 가옥 30여 채를 허물었다. 그러나 아버지 문종이 죽자 경혜공주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12세에 왕이 된 동생 단종의 자리를 노리는 숙부 수양대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종은 궁궐보다 누이네 집이 더 편했고,

1453년 10월 유혈학살 때 단종은 누이네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바로 경혜공주의 집에서 단종의 신하들이 살해되는 비극이 일어난다.


비극은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경혜옹주의 동생 단종이 12살에 왕위에 올랐다. 단종에게 경혜옹주는 천군마마와 같은 지원과도 같았다. 경혜공주 남편 정종과 함께 단종을 모시며 아버지의 3년 상을 갚아야 했다.

그러나 이듬해 수양대군이 물의를 일으켜 단종이 허수아비 왕이 되자 그녀도 추락했다. 1455년 수양대군인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상왕은 양위하고 부인 정종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경혜옹주도 남편 정종도 같이 동행했다.

설상가상으로 1461년 정종마저 반역죄로 고발되면서 공주의 삶은 암울했다. 결국 계유정난 2년 후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유배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결국 경혜공주의 남편인 정종도 반역죄로 처형된다. 부모, 누이, 남편을 잃은 공주는 스물여섯 살이다. 그러나 공주의 불행은 계속되고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은 연좌제를 통해 노예가 된다.

 

그러나 경혜옹주는 긍지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경혜옹주는 6살 난 아들의 손을 잡고 순천으로 떠나야 했다. 그는 전라도 순천에서 노비가 되었다.

한 나라의 공주에서 노비가 된 경혜공주 . 그러나 순천군수가 일을 시키려 하자 경혜주는 거절했다고도 한다. 어쨌든경혜공주는 노예가 되었고 세조에 대한 민심은 점차 악화되었다.

 

경혜옹주는 세조의 후궁인 정희왕후에게 아들과 딸을 맡기고 비구니가 되었다.역사 기록에 따르면 경혜공주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네가 내 무죄한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고 저주했다.


또 권씨가 침을 뱉은 자리에 피부병이 있었다는 등 당시 민심을 반영한 황당무계한 소문도 퍼졌다. 결국 경혜공주는 그렇게 남편 정종을 능지처참으로 보냈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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